<벽>은 거대한 벽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의 트래킹 쇼트로 시작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 지대를 표시하는 벽은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 차갑게 빛나는 철망, 검문소 등 갖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어디로 눈을 돌리더라도 편재하는 거대한 벽. 아랍 촌부는 오랜 세월 가꾸어왔던 밭이 하루아침에 벽 너머로 밀려났다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이 구역을 관장하는 이스라엘인 책임자는 “모든 것이 팔레스타인 인들의 잘못이오”라고 주장한다. 그 자신이 아랍인이자 유대인이라는 복잡한 아이덴티티를 껴안고 있는 비통은, 벽이 두 민족간의 넘을 수 없는 역사적 상흔이자 그녀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재현하는 오브제인 것처럼 생각한다. 날카로운 고찰보다는, 시적이고 내밀하며 사려 깊은 시선으로 역사의 상처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끝날 때 즈음 벽 사이 빈 틈으로 몰래 넘나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멋쩍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2004년 마르세이유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