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 살 중학생 소녀 제시카는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호기심이 많고 반항적이기도 하다. 단짝 친구인 미리암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내아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톰보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맡아 돌보고 온갖 집안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제시카가 거부하는 한가지 일은 의붓오빠의 뒤치다꺼리이다. 버스 차장으로 일하는 의붓오빠는 운동화 한 켤레를 마련할 욕심에 동료 운전수가 제시카를 강간하도록 도와준다. 제시카는 끔찍한 강간을 당하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제시카를 헐뜯고 다녔던 오빠를 어머니에게 이른다고 해서, 가난 때문에 의붓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씻을 수도 없는 열악한 집안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는 제시카를 곱지 않는 눈으로 보는 선생님들도 그녀가 겪은 끔찍한 경험에는 둔감한 채 그녀의 복장과 행동을 나무랄 뿐이다. 성폭력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녀가 기댈 사람은 단짝 친구인 미리암뿐이다. 미리암의 사랑과 이해는 제시카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제시카는 미리암이 풍기는 제비꽃 향기를 사랑한다. 자신의 냄새에 묻어나는 빈곤과 소외에서 상상적으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암의 집안도 어머니 혼자 빈한한 생계를 꾸려가지만 어머니가 미리암에게 쏟는 애정은 남다르다. 딸의 미래에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삶을 투사하는 미리암의 어머니는 천방지축인 제시카를 반길 리 없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제시카는 자신의 몸에서 강간의 체취를 위장하기 위해 상점에서 제비꽃 향수를 훔치게 되고 이 때문에 같이 있던 미리암도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