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프랑코 엘리카는 그의 딸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후 실의에 빠진다. 알레산드로 만조니의 <약혼자>를 새롭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실리로 날아간 그는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업으로 하는 사람, 자신의 거짓 죽음을 통해 평생 동안 그를 비껴갔던 명성을 얻으려는 영화감독 그리고 팔라골리나의 페르난도 그라비나 왕자 등 작은 마을에서 갖가지 성격의 사람들을 만난다. 왕자는 프랑코에게 딸 보나의 결혼식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 딸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영화제 소개글. 이탈리아의 영화적 전통을 고스란히 필모그래피로 아로새기고 있는 Marco Bellochio의 최근 영화이다. 그의 영화가 거의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거의 불가사의할 지경으로 네오리얼리즘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현실과 환상 나아가 신화적 경지에까지 다다르는 이 영화의 시공간적 구성은 거의 페데리코 펠리니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결혼식 비디오 촬영 장면에서 시작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화면의 현란한 교차편집은 곧 이어 인물들 간의 복잡한 관계들로 각각 전개되어 나가다가 결국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사유들로 수렴한다. 수미 상관하거나 각 이야기 플롯이 뻔한 듯 보이지만 기이하게도 영화 속 영화감독의 심리적 상황들을 매개로 하면서 동시에 상념에 빠진 영화감독이 시실리를 배경으로 벌이는 현대적 오딧세이의 모험과 신화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가 만나는 시실리의 왕자 혹은 또 한 명의 늙은 영화감독은 단순한 극 중 극의 다층적 의미 관계 속에서 영화라는 것에 대한 질문 속의 아이콘들로 승화된다. 이번 서울영화제에서는 유럽의 여러 영화제에서 이미 회고전을 여러 차례 가진 바 있는 마르코 벨로키오의 최근작인 이 영화와 함께 장편 데뷔작인 <주머니 속 주먹 Fists in His Pocket>(’65)도 함께 소개된다. (박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