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교외 버딘 곶에 사는 노동자 벤투라는 갑자기 아내 크로틸데에게서 버림받는다. 그는 34년 동안 머문 황폐해진 낡은 오두막과 최근에 지어진 저렴한 연립주택 사이에서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만난 모든 젊고 가난한 영혼들은 모두 그의 아이들이 되어간다. 이 영화는 작가 자신이 통과중인 현실의 시간, 그 공간 속의 한 인물의 총체적인 이야기,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감탄할 만큼 단순 명료한 방식으로 조각해내고 있다. 마치 페드로 코스타 자신이 완전히 주인공 벤투라와 한 몸이 된 듯 영화적 공간을 인물의 내부적 시간 속으로 흡수한다. 그의 <오소스 Osos>(1997)가 촬영됐던 리스본 북서쪽의 폰테인하스의 캡-버디엔 구역은 <반다의 방 Vanda’s Room>(2000)이 촬영될 때 이미 철거되었다. 폰테인하스에 34년 간을 살았던 주인공 벤투라는 그가 새로 입주하게 될 현대식 아파트와 딸 반다의 아파트, 그리고 아내 클로티드가 떠나면서 헝클어트린 그의 짐들이 그대로 놓인 낡은 폰테인하스의 집을 오간다. 꿈을 상실한 그곳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답장이 없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반복해서 읊는다. 모든 공간엔 거의 가구도 장식도 없고 흰 벽과 천장, 테이블과 의자뿐이다. 페드로 코스타는 15개월 동안 캠코더 외에 조명도 장비도 없이 단지 여러 개의 거울과 반사판을 사용해 일주일에 6일간을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과 그들이 존재하는 공간의 시간을 320개의 테이프에 담아냈다. 모든 인물들은 과거를 얘기하고 벤투라는 과거 속의 망령처럼 움직인다. 마치 영화는 그가 서 있는 공간의 벽 속에 갇혀 있듯 밖이 보이지 않는 희미한 창 밖의 빛을 통해서만이 살아 있는 존재의 이미지를 인식하게 한다. 고독한 한 인간의 관념적 시간이 이처럼 강렬하고 간결한 이미지의 조각처럼 공간을 지배하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고독한 영혼의 미스터리를 접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다. (김은희)